갱년기와 사춘기

일상

갱년기와 사춘기

디지쿤스트 2025. 1. 20. 21:47

갱년기와 사춘기

종종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차서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딱히 아픈 곳이 없이, 호르몬의 변화만으로도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 거라고? 납득이 가질 않았지만 좋아하던 운동도 그만두어야 했다. 잠이 오는 대로 잠을 자고, 아프면 약을 먹으며 강제적인 휴식을 취하며 1년 이상을 지냈다.

생각을 멈추고 아무리 아파도 쉬지 않았던 독서와 글쓰기도 쉬었다. 이유 없는 눈물과 감정들이 찾아올 때면 그냥 잠을 자는 식이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면 멀쩡한 사람들조차 미워 보이는 상태라서 최대한 외출도 하지 않았다. 감정과 미움들이 뒤엉커 나날이 습해지고 무거워졌다. 몇 겹의 이불을 덮어도 추워서 몸을 떠는 날이 있고, 반대로 훌훌 벗어도 더워서 숨을 몰아쉬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이불속에 갇혀있는 동안 아이들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다. 늙는 건 감추기 바쁜데, 아이들의 성장은 상장처럼 벽에 걸리기라도 하듯이 시선을 먹고 빛이 났다. 갱년기를 사춘기를 겪어봐서 짐작을 하고 조용히 기다려주지만, 갱년기는 처음 겪는 일이라 이불로 덮기 바쁘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방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해 줄 여유를 찾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니까. 

검색을 해보면 '갱년기와 사춘기' 중에 누가 이기고 지는지에 관한 글들이 많다. 호르몬으로도 경쟁을 해야 하는 경쟁중독자들인가. 누구 호르몬이 더 지랄 맞은 지 자랑하면 좀 나아지나. 오늘 싸우고 승패가 결정되면 내일부터는 그 전쟁이 끝나기라도 한단 말인가. 호르몬이 맘대로 그렇게 되는 거면 얼마나 좋을까. 잡다한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삐딱한 갱년기 호르몬이 또 날뛰기 시작된건가. 생각해 보니 사춘기 때도 참 많이 삐딱했었다. 이기적이고 꽉 막힌 어른들의 세상이 불순해 보이고, 나이 많다고 다 철이 드는 것도 아니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던 그 철부지 때가 생각이 났다. 툭하면 눈물을 보이며 대화를 막는 사춘기도, 질문 자체를 거부하는 사춘기도, 혼자만의 게임세상에 빠져 현실을 도피하고 있는 누군가의 사춘기를 함께 겪고 있다. 그들의 사춘기가 각자의 성역을 이루고 몸을 키우는 동안 내 공간과 통장잔고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네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청구서를 들이미는 동안 나는 아플 겨를도 없이 현실이란 거대한 용과 맞서 싸우고 있는 중이란 걸 얼까. 내가 아픈 만큼 너희가 좀 덜 아팠으면 하는 마음에..... 

세상이 온통 적대관계다. 안도 시끄럽고, 바깥은 더 시끄럽다. 모두에게 화가 나는 참으로 이상한 제2의 사춘기를 겪는 중이다.  늙는게 너무 싫다. 신체반응을 뚫고 나오는 소리, 끙끙 앓는 소리, 매일 피곤하고 힘들다는 소리, 아픈 걸 훈장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