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록의 책가도 6폭 병풍]
10월 한글날을 맞아서 한국적인 정물화 책가도를 소개해본다. 문자도를 소개할 까 했는데, 주로 한자로 된 그림이라 책 그림인 책가도로 대신해본다.
책가도는 책을 사랑하고 책정치까지 펼쳤던 한국 문화를 대변하는 그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책거리는 한국적인 정물화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책가도전통 민화 중 하나지만, 이 책가도가 조선 후기 성행하게 된 배경에는 정조의 책 그림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가도병풍>이 바로 이 무렵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정조가 책가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자 당시 귀인貴人들이 앞을 다투어 책가도 병풍을 집에 설치했다.
[책가도]
책가도(冊架圖), 책거리(冊巨里), 문방도(文房圖)라고도 한다. 높게 쌓아놓은 책 더미와 서재의 여러 가지 일상용품을 적절히 배치한 정물화풍의 그림으로, 전통 장식화 및 민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림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18세기 후반에 이미 널리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책가도는 특이한 표현법으로 그려졌다. 초기에는 서가로 구획된 화면에 소재들이 좌우대칭을 이루며 정확히 균형을 이루다가 점차 정물화처럼 자유로운 배치 구도를 취하였다. 화법은 보는 이가 그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보는 이를 바라보는 듯한 역원근법(逆遠近法)으로 그렸는데, 이는 서양의 현대 미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화법이다. 배경에는 대체로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
김홍도金弘道가 책거리에 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홍도의 책거리는 현재 전하는 작품이 없다. 19세기에는 이형록李亨祿이 책거리로 이름을 떨쳤다. 이형록은 57세(1864년)에 이응록李膺祿, 64세(1871년)에 이택균李宅均으로 이름을 바꾼 이력이 있다. 이형록의 책거리는 실제 책가로 혼동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구성이 더욱 간결해졌으며 기존의 갈색과 더불어 녹색이나 청색과 같이 새로운 배경의 색을 실험하기도 했다.
책과 함께하는 일상은 선비의 삶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주로 선비가 아들의 방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하였고 서재에 비치되기도 하였다. 면학에 정진하고 글공부를 적극 권장했던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서가 모양의 격자 구획 안에 책갑으로 묶인 책과 향로·필통·붓·먹·연적·도장 등의 문방구를 비롯하여 선비의 격조에 맞는 도자기·청동기·화병·화분·부채 등이 주요 소재이다. 또한 선비의 여가생활과 관련된 술병·술잔·담뱃대·담배함·악기·도검·바둑판·골패·시계·안경 등도 등장한다. 그 후 시대가 지날수록 소재가 다양해졌고 다른 민화들처럼 길상구복의 상징물도 등장하였다.
[이지숙 : 모란과 농담]
현대에도 책가도를 그리는 민화 화가들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재료도 수묵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크릴, 수채화 등 다양해졌고, 책과 함께 곁들이는 소재도 커피잔이나 텀블러 등 전통과 현대를 믹싱하는 작업물들이 재미있기도 하다.
요즘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책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소비되는 문화가 달라지면서 대신 다른 매체들로 일상을 채워가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책을 혐오하는 정도라니 어쩐지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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