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고전이 아직도 사랑을 받는가,' 하면 그것보다 뛰어난 후작이 없기 때문이라고. 아주 명쾌한 답을 내놓는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다른 책을 읽다가 [달에 울다]를 추천받았습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처음 접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최신작 표지에 적힌 이력 중에 무척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 이후, 문단과 선을 긋고 모든 문학상을 거부하며 50년 가까이 집필에 매진하고 있다. ' 이 부분, 호기심이 발동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 마루야마 겐지
그런가 하면, 꽃샘추위 살얼음판에 물 싸다귀를 맞는 듯한 후벼파는 문장들이 어찌나 통쾌한지 백 년 묵은 변비도 씻겨가는 기분이 듭니다. 왜, 진작 이런 솔직한 문장들을 만나지 못한 걸까요. 이런 선배는 어디서 만날 수 있나요. '어떤 것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다가 '이것은 문학이 아니다.'라며 삶 속으로 들어간 소설가, 그러면서도 50여년간 쉬지않고 집필하고 있는 그의 민낯을 삶으로 녹여 속옷처럼 가깝게 전하고 싶은 말들을 담았습니다.
글을 쓴다면서 글을 쓰는 그 행위 자체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글을 쓰는 사람은 많은데,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많아지고 문학은 침몰의 행로를 겪는 것이겠지요. 최소한 그런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라도 지닌 사람이 있다면, 꼭 소설을 써보길 권장하며 바로 실전에 투입시킬 수 있는 훈련 내용들을 담았습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쓰는 아마추어 소설가가 아니라 혼을 뒤흔드는 작품을 위해 고심하라고 합니다. 가벼운 감성에 치우치지 말고 날카롭고 굵은 진정한 감성을 찾으라고 합니다. 그런 소설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어딘가 부족한 사람, 그래서 세상의 더러움을 기꺼이 뒤집어쓸 수 있는 호기심, 주로 예술가들이 무시하는 것들 속에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요즘 봉 감독에 홀렸는지 이 문장을 접하니까 얼마 전 아카데미상을 받은 그의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읽는 내내 어딘가가 뜨거워지기도 하고, 따갑기도 합니다. 그 더러운 호기심은 미술관이나 음악회, 헌책방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힘든 작업을 시작했으면 계속하라고 합니다. 왜냐면, 이렇게 소설이라도 쓰지 않으면 영영 쓸모없는 사람으로 남을 존재였을 테니 말입니다. 저에겐 이 부분이 그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 원초적인 자극이 됩니다.
그가 찾는 소설가의 재능을 지닌 사람들의 기준이 그러하니까 말이죠. 도서관에 들러 일본 서적 코너를 돌면서, 참 별걸 다 책으로 만드는 나라구나 했던 생각이 듭니다. 작가는 내내 적당주의를 반복하는 어중간한 일본의 현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부럽네요. 왜, 우리나라엔 그런 현실을 지적하는 어른이 없는 걸까요.
맥북 프로도 없고, 기계식 무소음 키보드가 없어서 소설을 못 쓰고 있는 와중에 수성 볼펜과 싸구려 원고지만으로 충분하다고 일침을 가하는 어른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도구에 집착하여 이 세계로 들어온 이는 삼류밖에 없다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전 아직 삼류도 못되었으니까요.
모든 예술이 그렇듯, 소설가 역시 영혼을 다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혼을 마주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또한 출판사의 편집인 역시 본인 자신밖에 추스르지 못합니다. 고로, 출판사, 독자, 편집인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말라고도 전언합니다.
'오해 아닌 이해는 없다.' 그러므로 묵묵히 쓰고, 묵묵히 발표하고 평가에 휘둘리거나, 치장하려 들지도 말라고 합니다. 겉돌고 있는 소설가가 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너무나 정상적인 사람들이고 평범한 세계에 있는 사람들일 테니까요. 소설가는 오직 문학으로 소통하면 된다고 합니다. 독자가 그 외의 것을 바라더라도 말이지요.
'오기에 찬 정신주의' 우리나라 표현으로는 '외골수'라는 표현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가라고 하면, 골방에 틀어앉아 대낮부터 술에 절어 지내는 게으른 사람을 떠오르곤 하는데, 소설가는 반드시 술과 마약을 끊어야 한다고 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며 매일 부지런히 글을 쓰고, 건강에 신경 써서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챙겨 먹으라고 하는 현직 작가의 조언은 처음 듣습니다. 건강관리법, 처세, 자기 관리, 거주 문제, 경제 상황에 대한 소소한 조언까지 담아 '당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응원에 괜히 용기가 솟기도 합니다. 그래봤자, 당장의 5분을 넘기기도 힘들겠지만 말이죠. 지금까지 읽어온 어중간한 소설 글쓰기의 기법이 담긴 그 어떤 책보다 가장 따뜻한 내용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덮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의 소설가'를 읽을 계획인데, 과연 끝까지 읽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대신 마루야마 겐지의 다른 작품들이 더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처음 계획대로 그의 작품 '달에 울다.'를 꼭 필사하려고 합니다. 전 소설가가 아니라 편집자입니다. 신뢰하고 싶고 같이 일하고 싶은 소설가의 모습과 믿고 거를 어중간한 소설가의 기준을 이 책에서 조금 찾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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