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은퇴 후 나의 40대 이야기가 될 [매우 초록] 노석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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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은퇴 후 나의 40대 이야기가 될 [매우 초록] 노석미 에세이

디지쿤스트 2020. 2. 26. 17:20

 

 

 

 

은퇴를 앞당겨서 40대에 귀촌을 꿈꾼다면, 어쩌면 나의 40대 이야기가 될만한 노석미 작가의 "매우 초록"을 읽었습니다.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작업실을 차리고 텃밭을 일구어 그때그때 싱싱한 야채를 거두고 고양이들의 나른한 일광욕 장면을 모델 삼아 그림을 그리며 사는 일이 과연 계획만큼 순조롭기만 할까 싶었습니다.

 

 

 

 

서울과 가까운 곳에 전원생활을 살아본 경험으로 오히려 방해요소가 많을 거라는 것을 짐작하며 몇 년이나 버텨낼지 궁금해졌습니다.

부동산 중계자들과 땅을 보고 다니면서 남긴 기록들이 실감 나게 흥미롭습니다. 책에 관해 정보 없이 제목만으로 읽기 시작했으면서도 초입부터 어떤 그림을 그릴지 감이 왔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글이라 잡다한 10년의 이야기들을 어떤 방식으로 축약할지 미리 스케치가 잡혀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담벼락 문턱이 낮은 시골 생활은 터울 없이 나누고 더불어 쓰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런 그들의 삶에 턱하니 나타난 예술가, 더구나 화가라니 산수화나 그리겠거니 했다가 작가의 작품을 보고 말문을 닫았다는 대목에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내 마당에 잡초를 베지 않으면 다른 집까지 씨가 날려 민폐를 줄 수도 있고, 키우던 꽃을 나누면 내가 다니는 길 역시 꽃길로 가꿀 수 있다.'이 말은 달콤한 유혹처럼 다가왔지만, 원치 않는 방문과 간섭과 허물없는 과한 애정이 넘치는 일상이 어떨지는 안 봐도 아찔하게 황홀할 지경입니다. 귀촌을 꿈꾸다가도 멈칫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먼 곳으로 귀촌을 꿈꾸던 지인은 텃세에 못 이겨 결국 회귀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어려운 사정이 있을 테지만, 해가 뜨면 몸을 움직여야 하고 빈 땅을 놀리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곳에서 고양이를 가두어 키우고 빈 땅에 먹지도 못할 목련나무를 심는 화가가 한심하고 만만하게 보이기도 했나 봅니다.

몰래 보내는 연애편지 20통으로 낚을 수 있다는 순박한 마음에 앞서 받는 사람의 공포심 정도도 헤아릴 수 없는 일방통행의 애정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인적이 뜸한 시골에서 사는 중인데, 짐작할 수 없는 누군가가 나의 주소로 나에 대해 안다는 듯이 편지를 보내온다면 내용이 어쨌든 저 같으면 신고부터 했을 것 같습니다. 편지로 마음을 통하더라도 일면식이라도 있어 눈빛이라도 통했다면 모를까, 다짜고짜 보내온 편지는 불쾌함을 넘어 공포였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고 십 년 생활을 빼곡히 채운 에세이는 여린 묘목이 성장하 듯 알알이 채워졌습니다. 들고양이들을 챙기며 오히려 뱀과 쥐로부터 보호(?)를 받고, 집에서 함께 지낸 고양이들과 이별하는 동안에도 자신이 하는 일과 일상을 지켜냅니다. 겨울을 지내는 동안 공기를 데울 난로를 구입하고 태울 장작을 구비하는 것도 혼자 척척 해결해가는 듯 보입니다. 농촌에 혼자 사는 남자는 흔하지만, 혼자 지내는 젊은 여자가 없다 보니 단지 그것만으로도 곤란한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되려 말문이 막힐 정도로 ㅡ그녀의 그림만큼이나 ㅡ 시원하게 답을 내놓는 사이다 대처 방법도 마음에 듭니다. 

 

단절된 도시 생활을 떠나 시골에서의 일상은 겉으론 조용해 보여도 들여다보면 치열하게 바쁩니다.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사는 이유만으로 호기심을 받기도 하고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은퇴를 한다면, 그녀 곁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오래전 경험한 귀촌 생활에 막연히 겁만 먹고 있었는데, 적절한 대처 방법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가니 누군가의 여우짓에 마음이 놓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