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그린 화가들

일상

고양이를 그린 화가들

디지쿤스트 2018. 10. 4. 14:57





더 이상 쥐 사냥을 하지 않는 고양이는 집으로 들어와 사람의 일상에 함께한다. 그들의 할 일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일상에서 만족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고양이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자신이 집중할 것과 무관심에 대해 분리가 확실하다. 쓸데없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모든 사람에 집중하며 살지 않아도 만족하는 법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농경시대의 쌀을 지켜주며 신성하게 여기던 그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가와 화가들은 외로움과 고립을 적당히 즐기는 듯한, 오히려 외로움이 편안해 보이는 고양이로부터 위로를 받아온 것 같다. 적업을 하면서 혼자만의 삶의 일부분이 된 외로움을 고양이 집사 생활로 달래는 것이 아니었을까. 

 


"고양이과 동물 중 가장 작은, 그것이야말로 걸작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고양이 연구]



또렷하지 않아도 목적이 없어도, 갸르릉 소리에 멍해져도 그저 조용히 가만 있는 것만으로도 교감할 수 있는 동물, 고양이를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게 되어도 전혀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내 목소리를 한 음절 한 음절 세심하게 듣고 소화시키는 너를 지켜보면서 나는 조금 슬퍼진다. 네가 내 말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한 글자도 떨어뜨리지 않고 차곡차곡 개어 넣는 너의 속도를 무시한 채 나는 내 이야기를 쏟아내기에 여념이 없다. 나를 그렇게 유심히 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또박또박 읽어내지 않아도 좋은, 시시한 이야기라는 말을 먼저 해줄 걸 그랬다. 내 안의 서러움과 불안함과 초조함은 너에게 충고할 여유도 주지 않고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나는 체념하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어차피 너는 이미 나를 이해하고 있을 테다. 
- 박은지, <어느 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91p 



오귀스트 르누아르 [소년과 고양이]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마르셀라]



인간에게 고독이란 중요한 것이다. 당신은 평안과 만족을 얻으려면 그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당신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샘이다. 그것은 당신이 당신의 모든 경험으로부터 진실로 가치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실험실이다. 그것은 당신에게 생기는 불미스러운 사건들 때문에 인생의 기초까지 동요될 때 당신을 안정시키는 안식처다. -마가렛 뮬락


변상벽 [국정추묘]  

조선시대 숙종, 도화서의 화원으로 닭과 고양이를 많이 그린 화가였다. 가을 국화 옆에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란 털을 세운 고양이가 있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세상을 조소하는 듯한 표정과 말아올린 꼬리에 자신감이 느껴진다. 앞으로 다가올 겨울의 추위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 당당함이랄까. 고양이의 이 근자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루이스 웨인 [신랑과 신부] 

루이스 웨인은 암에 걸린 30살 연상의 부인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키우던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해서 평생 고양이를 그린 화가다. 아내가 결혼 후 3년만에 세상을 떠난 슬픔을 딛고 1910년대 중반까지 신문, 잡지, 책, 그림엽서 등 고양이 그림으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말년에 정신분열(조현병으로 추정)을 앓았다고 한다. 


고양이를, 아니 동물을 의인화해서 그림을 그렸던 것은 당시에는 전례가 없던 일로 획기적인 시도였다. 동물을 사람처럼 의인화해서 그린 그림 그것만으로도 인기를 누리기에는 충분했지만, 저작권이나 작품값보다 고양이에 더 관심이 많던 그의 작품은 헐값에 팔려나가고 무단으로 도용되고 복제되어 개인적 형편은 나아지지가 않았다. 대식구를 꾸려나가는 데 빠듯한 생활에 오히려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면서, 고양이들의 표정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귀엽고 쾌활한 고양이 그림으로 인기를 누리다가 급기야 대중의 관심이 멀어지자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반영한 듯 나중에 그린 고양이를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그 심리상태가 그대로 그림에도 반영되어서 심리학 연구 사례로도 쓰인다. 어느 명언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지혜로운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조반니 레데르 [베르타치의 소네트가 있는 고양이 아르멜리노 초상화]


때로는 고양이에게 자신을 반영하면서, 때로는 자신의 희망사항을 고양이에게 적용하면서, 예술가들은 고양이로부터 위로와 영감을 받으면서 작품을 남겨왔다. 



‘아, 그렇구나. 저 책상에 앉아서는 즐거운 일만 하고 싶은 거야. 그것도 나랑 똑같군. 나도, 저 책상에 누워 있을 때는 저런 표정을 지을까?’ (109쪽) 
이케후지 유미, 고양이 노트- 


페르낭 레제 [고양이와 여자]


고양이와 책과 여자, 자아와 감성의 완전한 독립적인 여성은 균형을 이루면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튼튼한 체력과 함께 무척 견고해 보인다. 검고 곧게 내린 생머리, 오똑한 콧날, 어쩌면 저리 단순한 삶의 방식이 고양이와 비슷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파울 클레 [신성한 고양이]


[고양이와 새]


"우리를 조금 크게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하루면 충분하다". - 파울 클레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말했던 파울 클레는 아이처럼 단순하게 사실을 말하면서 내면을 그리고자 많이 노력했다고 합니다. ‘느긋함’과 ‘집중하기’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 고양이처럼 말이죠. 

 

"고양이는 그냥 가끔 없어집니다. 주위에 있을 때 사랑해주고 고마워해야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