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 : 스토아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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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 : 스토아 수업

디지쿤스트 2021. 4. 19. 17:10




철학자가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 : 스토아 철학 수업


스토아 수업 / 라이언 홀리데이, 스티븐 핸슬먼/다산초당



철학을 하는 이유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니체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걸 돕지 못하는 철학은 말로써 말을 비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작가는 스토아학파의 삶을 통해 더 나은 삶의 기술을 찾아보기로 한 것 같다.


철학을 다룬 책이라는 데, 라이언 홀리데이작가의 이력은 꽤나 독특하다. 19세 대학을 중퇴하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제자로 지내다가 아메리칸 어패럴 마케팅 이사와 구글 자문 등 실리콘 밸리의 철학 멘토로 활동. 현재까지 고전 철학과 현대인의 삶을 연결 짓는 칼럼과 책을 출간하고 있다.




"왜 스토아학파일까"




친절하고 다정하고 인류애를 장착한 그 철학이, 21세기 로봇 시대에 왜 필요한 것일까. 말만 번지르르한 자기애 투철한 철학자들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던 때도 있지 않았던가.



스토아 철학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말로만 떠들던 콧대 높은 철학자들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불협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역경을 견뎌내고 살아간 철학자들이었다. 실용주의 그들에게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해 보기로 한다.






철학과 존재의 이유




재난과 역경이 없어도 삶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마이너스가 되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늘 텅 빈 것 같고, 쳇바퀴를 돌다가 지쳐서 땅에 내려오면 그대로 비명횡사해도 되겠지 싶은 날도 있다.


고작 자기 자신 하나를 감당하지 못해 괴롭히다 지치곤 하는데, 그마저도 의미가 없어지면 이제 뭘 해야 하나 싶은 허탈함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벌어진 인생의 틈에서 쥐어짜는 생각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스스로의 생각에 갇히지 않게 해주는 것은 자기 계발서가 아닌 철학이었다.




철학이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




많은 이를 돕는 것이 목적인데 그것이 안되면 이웃을 돕고 그것도 안되면 자기 자신이라도 돕기 위한 것이 스토아학파의 목적이다. 때로는 스토아학파와는 거리가 먼 삶을 누리기도 하지만, 마지막에서라도 당당함을 되찾으며 진정한 자유를 누릴 자격을 찾았다.


스토아학파라고 쓰고 고집 센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읽는다. 고구마도 이런 고구마 같은 학파가 또 있을까 싶다. 네로의 폭정 아래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죽음도 불사할 만큼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난세에 더 빛을 발한 철학자들의 마지막은 두고두고 귀감이 되었다. 몇몇 경우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거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살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결국은 스토아학파 다운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독립적 사고를 지닌 스토아학파는 여성에 대해서도 평등을 주장했다고 한다. 노예 출신의 에픽테토스를 제자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제논에서 마르쿠스까지 스토아 철학에서는 금욕, 절제 용기가 빛나는 덕목인 것 같다. (그들이 다 그렇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스토아 학파 

 

 

  • 옳은 일을 하라.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본인이 선한 사람이 되어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어떤 삶도 나름의 고난과 역경을 겪는다.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시련을 견디게 해주는 철학의 근간이 있기에,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살다가 부끄럽지 않은 작별을 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누구도 실수하지 않고 완벽했던 스토아학파는 없었지만, 지식과 정보로 남을 평가하는 데 쓰지 말라는 말은 깊게 남는다. 감정과 기분의 상태를 여과 없이 표현하는 건 본인을 포함 타인에게도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고 어떤 죽음을 택할 것인가, 이 주제는 앞으로도 영원히 회자되면서 철학자들의 방문을 들락거리게 될 것 같다. 어떤 부분, 어느 방향으로 길잡이를 두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철학의 가르침으로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없지만, 그 일을 어찌 받아들이고 행동할지는 스스로 택할 수가 있다.